[엘르보이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엘르보이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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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플루트를 꺼내 다시 불고 있다. 플루트 레슨은 중학교 때 받고 이후로 받지 않았으니 다시 배우는 건 20년 만의 일이다. 친구들과 10년 뒤에 뭘 하고 싶은지 얘기하다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게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능숙하게 다루는 악기가 있으면 즐거움이 다채로워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집에 방치된 플루트가 떠올랐다. 주변에 플루트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어 레슨 관련 정보는 많이 찾아보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플루트 레슨이 시작됐다.
20년 전에 배웠어도 기본 손가락 움직임이나 소리 내는 법은 아니까 진도도 빠르게 나가고,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원가계산
다. 첫 레슨을 시작하고 30분도 되지 않아서 깨달았다. 플루트가 이렇게 몸으로 부는 악기였나 싶을 만큼 온몸에서 땀이 났다(한겨울이고, 밖의 체감 온도는 영하 15℃였는데!). 소리도 엉망이고, 입술 대는 방법도 틀렸고, 손가락에 힘도 너무 많이 주고 있고. 악보 두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교정받는 상황이 낯설기도 하고 긴장해서 등에 식은땀이 났다.소상공인창업자금대출
그렇게 한 시간. 마지막에 선생님이 그랬다. “몸의 모든 게 굳고 힘이 많이 들어간 상태라 어려운 건 당연해요. 힘을 빼는 데도 어른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좀 여유를 가지고 길게 배운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정말 그런 날이 오긴 올까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초면이라 말없이 레슨실 문을 나섰다.
하루는 3옥타브 높은 음을 불신용회복대출
었는데, 너무 이상한 소리가 나서 선생님께 좀 미안했다. “이런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한다니 가르치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은 아니네요.” 연습곡 하나를 마치고 멋쩍은 내가 말을 붙였다. 선생님은 “부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어요?”라고 했다. 네, 선생님. 저도 귀가 너무 괴로워요. 그런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내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높은아주캐피탈자영업자
음을 불려면 세게 불어야 소리가 나는데 힘을 주지 않고 세게 부는 게 뭔지, 손가락에 힘을 빼면 플루트가 떨어질 것 같은데 어떻게 손가락에 힘을 빼는 건지, 대체 몸에서 힘을 뺀 상태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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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하소연을 넋두리처럼 하는 내게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선생님이 가장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경험은 입시도, 콩쿠르 준비도 아니고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600곡의 성가곡 멜로디를 녹음할 때였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하고 쉬운 곡이니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는데(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해보미즈사랑 cf
니 아니었다. 다양한 음표로 이뤄진 600곡을 한 번 이상 부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공이 들어갔다.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반복적인 일이 계속되는 지루한 시간을 지나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플루트를 일정 이상 불면서 한 계절을 지나고 나니 플루트를 편안하게 느끼는 정도가 달라졌고, 플루트를 부는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다고 한다. “진아여성창업대출
씨도 플루트랑 같이 있는 절대적 시간이 많이 쌓여야 해요. 그건 말이나 생각으로 깨달아지는 게 아니에요.” 결론은 이거였다.
나이가 들수록 배움의 속도와 적응의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는 뭔가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드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고, 일상에서 해오던 일과 비슷한 일은 감각적으로 빠르게여자직장인패션
처리하고 또 배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것 또는 결과물이 느리게 나오거나 성장이 바로 보이지 않는 일은 피하거나 빠르게 포기했다. 내 시간을 더 의미 있는 곳에 써야 한다고,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데는 그 세계의 규칙에 맞는 절대적 시간과 상대적 속도가 필요한데, 그동안 살면서 정해놓은 주택금
내 속도와 시간 투입량 때문에 다채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걸 피해온 건 아닐까. 10년 뒤에 ‘즐거움을 더 다채롭게 느끼고 싶다’는 내 바람은 더 많은 걸 경험하는 것에 앞서 각각의 즐거움이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지루함과 고통, 멋쩍음 같은 걸 견뎌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이걸 잘 견딜 수 있게 된 건 아니지만.
플루트 레슨을 받은창업기업지원자금
지 4개월째. 선생님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플루트를 불면 여전히 땀이 난다. 여전히 이상한 소리가 나고 소리의 강약 조절을 못하지만, 내 몸 전체가 플루트가 돼 같이 울리고 있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1년 뒤, 어쩌면 2년 뒤엔 이런 찰나가 한 마디가 되고, 또 한 곡이 될 수도 있겠지? 얼마만큼의 길이인지는 알 수 없는 이 세계의 절대적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 홍진아 」
밀레니얼 여성들의 일과 삶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여덟 명의 여성 창업가를 인터뷰한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