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선명하게 슬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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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춥고 고달프다고 잉잉 우는소리를 했던 것이 무색하게 귀국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4개월의 타지 생활은 아주 짧아서 1월과 2월은 이곳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달이었고, 3월과 4월은 그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달이었다. 겨우 이곳이 좋아졌는데 떠나야 한다. 교환학생 생활의 끝. 4월 중순이 되자 시간이 요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볼 수 있고, 들기름 막국수나 마라탕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온몸이 찌릿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석방을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으로 남은 날짜를 하나하나 지워갔다. 동시에 하루하루가 총알처럼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세법개정안
무한대로 늘어나거나 아주 찌부러진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 앓았다.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앞으로 오지 못할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하고 싶었다. 괜히 모든 곳에 카메라를 들고 가고, 안 가던 행사까지 참석하고 나서 몸살이 났다. 이별 그대로를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는 걸, 채 슬퍼할 시간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는 걸 떠나기 일주일 전에 마케팅
한 친구와 만나면서 알았다. 학교 식당에서 영상 편집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낯익은 친구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같은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엄청 친한 건 아니고, 복도에서 오가며 “편집은 어떻게 돼가?” 하고 스몰 토크를 주고받는 정도. 그 애가 물었다. “다음 학기 수업은 뭐 들을 거야?” 내가 답했다. “나는 교환학생이라….” 여기서 보내러쉬앤캐쉬 광고
는 학기는 한 학기뿐이며, 일주일 뒤 귀국한다고 설명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이곳에서 사라질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니면 이미 떠난 사람처럼 말한 것도 같다. 그때 그 애의 얼굴을 봤다. 흠칫 놀랐다. “뭐? 안 돼! 나 네 영상이 정말 좋았단 말이야.” 처음에는 다정한 미국인의 대외용 리액션 정도로 생각했다. 내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애는 금러시앤캐시 광고
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사람처럼 엉망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이번 학기가 좋았으며, 집으로 가는 것도 기대된다고 무심하게 덧붙였다. 내 얘기를 듣던 그 애는 세 번 정도 더 우는 얼굴을 했다.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이후로도 한참 이야기하다 겨우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누군가와 이별하면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모기지대출자격
. 어떤 이의 성취에 진심으로 좋은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에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좋거나 싫은 감정의 희뿌연 연막에 싸여 희미하게 느껴진 것이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어린 마음을 들키기 싫어 아주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내가 상대보월차 연차
다 더 큰 마음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혹은 돌아올 대가가 없는 곳에 큰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을 내보이기 싫었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심장이 둥둥 울려 목구멍까지 뛰는 것 같아도 그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까지 속이곤 했다. 실은 그 정도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크게 슬퍼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두고 생활비대출 부모님
후련하게 떠나는 사람의 뒤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이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슬프지 않다고 말하면서. ©unsplash 언젠가부터 몰입하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액정 필름을 잘못디딤돌대출 필요서류
붙이면 생겨버리는 기포 방울처럼 언제나 조금씩 ‘들떠’ 있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빨리 빠져나와 방에 돌아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약속을 잡을 때도 급하지 않지만 끝내지 못한 일을 떠올리며 결국 만남을 미뤘다. 책을 읽다가도 소셜 미디어에 올린 영상 조회 수를 생각했으며, 편집할 때는 즐겁게 노는 다른 친구의 소식을 보며 부러워했다. 아혼합상환
무튼 나는 아주 멀거나 이미 뒤처진 시간 속에 있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의 이름을 ‘불안’ 혹은 ‘조급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혹은 방패. 상처받기 싫어서 일부러 몰입하지 않은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성공하고 싶은 일이 그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할까 봐 그저 취미인 척한 날들. 사실은 아주 열심히 해서 누구보다 유명해지고 싶지만, 일부러 그런 마음을직전학기 성적
줄이고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변명들. 그 애의 우는 얼굴에서 나는 줄곧 무언가로부터 눈을 피하는 내 얼굴을 봤다. 이곳과의 이별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은 벌써 한국으로 돌아가 그곳의 삶을 그리느라 바빴다.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기에는 마음의 크기가 좁았고, 성격이 급해 이미 저만큼 달려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마주할 때도 그랬다. 어쩌면 인생에서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이 내게 너무나 큰 의미가 됐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잠깐 있다 떠나가는 동양인 교환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아 헤어짐의 아쉬움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내 작업물이 진심으로 좋았다고, 네가 떠나가니 너무 아쉽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이는 여자아이에게서 내가 무얼 잃어버렸는지를 발견했다. 그 친구가 떠난 이후 가만히 몇 분을 흘려보냈다. 노트북을 덮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께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는 친구가 손을 흔들며 오고 있었다. 그와 긴 대화를 나눴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빙 둘러 캠퍼스를 걸었다. 여전히 슬프지 않았지만, 적어도 잘 작별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었다. 이곳에서 사귄 친구 한 명과 마지막으로 약속을 잡았다. 아직 남아 있는 음식 몇 가지를 나눠 먹을 친구를 모아 기숙사로 초대했다. 헤어질 때는 힘을 줘 포옹했다. “다시 만나.” 가능하지 않은 인사말인 걸 알면서도 건넸다. 그 애들을 꾹 안았을 때 조금 선명하게 슬퍼한 것도 같다. 「 김지우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뇌병변장애인의 삶을 담은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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